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어드 러스틴 (문단 편집) === 신보수주의로의 전향 ===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스틴의 사회당 및 노동조합에 대한 헌신은 강해졌으며 [[미국 사회당(1901)|미국 사회당]]의 전국 의장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러스틴이 이끄는 사회당은 매우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소련]]을 파시즘적 체제라고 부르며 반대했으며, [[조지 맥거번]]을 지지하는 신좌파 세력에도 반대했다. 러스틴은 사회당의 의장으로서 "사회당"이라는 명칭이 "사회주의자"를 암시하기에 친 소련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하며 당명 개정을 주장했고, 1972년 사회당은 러스틴의 의견대로 당명이 "사회민주당"으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러스틴은 표면적으로는 맥거번과 닉슨에 모두 반대했지만 청년좌파와 흑인 민권 세력으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었던 [[조지 맥거번]]을 더욱 경계하였다. 특히 러스틴은 맥거번의 평화주의가 소련의 야욕으로부터 흑인과 소수인종의 인권을 지킬 수 없는 무책임한 고립주의라고 생각했다. 같은 맥락에서 [[헨리 M. 잭슨]]의 행보를 지지했고, 1970년대 중반에는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소련 내 유대인 탄압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러스틴은 아프리카 흑인 민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아프리카 흑인 민권의 가장 큰 적을 [[소련]]과 [[공산주의]]로 규정했다. 그는 [[로버트 무가베]]와 같은 일부 아프리카 흑인 지도자들이 진정한 민권의 적이라 생각했고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프리카 공산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흑인 정권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시오니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고, 이 과정에서 [[제시 잭슨]]을 비롯한 많은 동료 민권운동가들과 결별해 사실상 [[신보수주의]]자로 전향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정권 수립으로 러스틴은 레이건에 호감을 느끼고 그와 협력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회당 출신이었던 [[진 커크패트릭]]과도 동맹 관계를 맺었다. 1980년대 말에는 남미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며 신보수주의적 국제주의자로 거듭났다. 우익 인사와 어울리고 보수적인 발언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말년까지 노동권을 옹호하며 대내적으로는 사회주의적인 신념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어 1987년 아이티 관련 업무를 맡다가 뉴욕시에서 숨을 거두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러스틴의 흑인 민권에 대한 헌신을 칭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